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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개미, 파란 명찰을 가슴에 단 날들


-영수에게



씨발. 우선 좀 혼탁해져야겠다. 그러니까 너도 알다시피 얻어터지는 날들의 연속이었어. 어벙하게 바가지머리가 뭐냐고 터지고 깡촌에 살면서 쓸데없이 덩치가 크다고 터지고 눈빛이 이상하다고 터지고 입술이 순대같다고 터지고 하여간 이유도 모른 채 터지는 날들이었어. 그래서 내가 육상부에 들어간 거 아니냐. 맞기 싫어서. 개떡같은 선배들이 5교시 이후에 교실에 들이닥쳤잖냐. 육상부는 5교시까지만 하니까 육상부에 들어가면 맞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 근데 그게 판단 미쓰였지 뭐냐. 육상부 선배들이라고 주먹이 없었겠냐. 병신 천치들도 안 맞는다고 방학 때도 나는 맞아야만 했어. 육상부에 방학이란 게 있을 리 있겠냐. 뭘 자꾸 말하래? 한마디로 좆같은 날들이었지.


소나무 우거진 강변? 왜 모르겠냐. 교련이랑 야외 수업하던 데지. 보이면 넋 나간 할머니 내복 같은 진달래가 산을 뒤집어씌우고 초록빛 강물은 햇빛을 껴안고 굽이쳤지. 아름다웠지. 젠장, 하지만 누가 솔밭을 좋아하겠냐? 너 혹시 좋아하냐? 으슥한 데서 들키지 안호 맘껏 쥐어터지라고 하루하루 몸통이 굵어지던 빌어먹을 놈의 소나무를. 우리 동창 중에 소나무 좋아하는 놈 하나도 없을 거다. 그랬지. 라일락 향기가 온 세상을 뒤덮어도 우리는 휘파람을 불지 않았지. 신발을 구겨 신지도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지도 않았지. 바람 쐰다고 돌아다니지도 않았고 껌을 씹지도 않았지. 우리는 감시당했어. 친척들에게서 받은 돈까지 죄 토해내는 형편이었으니 말해 뭐하겠냐. 주머니가 투명 비닐이 아니었던 애는 없었을 거다. 우리는 망초 대궁처럼 아무 손아귀에나 잡히기만 하면 꺾이는 운명이었어. 학교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는 그 짧은 시간에도 우리의 심장은 널빤지 위에 올려져 어쩔 줄 몰랐어. 맥박이 쥐의 맥박처럼 올라가고 침은 바짝바짝 말랐어. 어떤 날은 환청을 듣기도 했지.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린다야. 잠깐! 거기서! 라는 말. 우리는 공황 상태에 빠뜨리는 말. 죽여버리고 싶어. 개새끼들! 씨발새끼들! 잘나지도 못한 주제에 나이 더 처먹었다는 꼴같잖은 이유로 날뛰다니. 입술을 꾹 깨물고 있었지만 머릿속으로는 놈들에게 퍼부을 환상적인 욕을 생각하고 있었어. 찜 쪄 먹어도 시원찮은 놈들! 평생을 물에 담가 울궈도 썩은 물이 나올 놈들! 송장 옆구리에 붙은 진드기만도 못한 놈들! 더러운 손과 발이 우리의 얼굴을 강타했지. 아직 키스도 해보지 않은 여자애들에게까지 손을 댔어. 가진 거라곤 똥덩어리뿐인 강통 새끼들!


모두가 쉬쉬하는 날들이었어. 치욕의 날들이었어. 말하는 벙어리와 듣는 귀머거리가 쫙 깔린 날들이었어. 눈감은 선생들과 교복을 죄수복으로 아는 애들. 자기 자신에 관해 떠도는 소문은 까맣게 모른 채 팝송을 흥얼거리는 애들. 모든 것이 끔찍했어. 징그러웠어. 그런데 뭐? 그 시절이 그립냐고? 파란 멍을 명찰처럼 달고 지내던 그 시절이? 그래. 그립다 그리워. 그리워서 한달음에 달려가고 싶다. 연탄집게를 벌겋게 달궈 그 잘난 놈들 눈알을 꾹 눌러주고 싶다. 그런데, 궁금한 게 한 가지 있어 도무지 참을 수가 없네. 왜 수박씨를 먹어도 포도씨를 먹어도 나한테서는 싹이 나지 않는 거냐? 너 혹시 아냐? 이런 거 묻는 내가 이상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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