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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




글은 한 줄의 흥밋거리에서 시작됐다. 서울에 사는 한 여고생이 친구를 살해. 나는 그 한 줄 뒤에 숨어 있을 여러 겹의 긴 이야기를 상상했다. 그리고 요약하면 단 한 줄에 지나지 않을 공허한 길고 긴 변명을 상상했다. 여러 겹의 긴 이야기와 단 한 줄의 단순한 흥밋거리. 동시에 그 두 가지인 이야기를 원했다. 동시에 두 가지 그 어느 것도 아닐 이야기를 원했다. 그렇게 시작된 글은 프라하와 뉴욕을 거쳐 서울에서 끝이 났다. 처음 나는 이 글과 멀리 있는 서울, 그리고 프라하의 일상을 연결시킬 수가 없었다. 포커스를 잡을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 붕붕 떠다녔다. 그곳의 삶은 서울의 삶과 완전히 달랐다. 모든 것이 느리게 흘러가는 풀밭과 햇살의 도시에서 삭막한 도시의, 그것도 학생의 삶을 그린다는 것은 시시한 농담처럼 느껴졌다. 아이들은 삭막한 서울에 있었다. 서울은 황사와 함께 저 멀리 있었다. 아이들은 저 멀리 누런 모래바람의 도시에서 어색한 춤을 추고 있었고 나는 겨우 삐걱거리며 다가갔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양손으로 책상을 꼭 붙들어야 했다. 그곳에서 나는 다만, 그들과 그들의 도시 그 모든 것의 죄를 사하여주고 싶었다. 무죄의 아이들을 무죄의 땅에 풀어놓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글에서 아이들이 총에 대한 얄팍한 농담을 주고받은 그날 버지니아에서 조승희가 자신을 포함해 서른세 명을 총으로 쏴 죽였다. 나는 내가 쓰는 글이 무서웠다. 하지만 운명은 정해져 있었고 나는 그 운명을 향해 움직여야만 했다. 글을 쓰는 시간을 제외하고 아침부터 밤까지 조승희에 대해 생각했다. 그에 대한 뉴스를 읽다 말고 책상 앞에 앉아 울었다. 가끔 주인공을 위해 테스코에 가서 칼을 관찰했다. 글을 끝내던 날 아침부터 밤까지 열두 시간 동안 글에 매달렸다. 작업이 끝나기 세 시간 전 부엌 근처의 등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무언가 타는 냄새가 났다. 처음에는 오랜 작업으로 인한 과열 때문에 랩톱이 타오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랩톱은 멀쩡했다. 나는 냄새를 좇아 부엌으로 갔다. 환한 불빛의 한가운데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잠시 동안 바라보다가 스위치를 내렸다. 그리고 돌아가 계속해서 글을 고쳤다.


2008년 1월 김사과, 저자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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