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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호, 하나의 바늘 끝에서 얼마나 많은 천사들이 춤추는가




비행기 창문으로 내려다본 밤바다에는 선박의 불빛들이 인간의 별자리를 그리고 있다 70억 개의 빛과 어둠이 제각각 명멸하는 하늘 아래, 나는 저들이 평생 읽어볼 일 없는 한 줄 고민을 궁리중이다


천사가 바늘 위에 몇 명 올라갈 수 있나?


옆자리에는 얇은 담요를 안락한 죽음처럼 두른 소녀가 쌔근거리고 있다 하느님이 거짓말쟁이가 아닌 건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기 때문이지만 나는 잠든 당신의 눈동자 속을 같이 걸으며 허풍선을 떨지 않을 수 없다 소녀여, 


내가 떠나온 섬나라에선 달빛으로 술을 빚는다 마시기 전엔 술병을 두드리는데 그건 거기 깃든 악귀를 쫓기 위해서란다 난 운명선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술병을 타악기처럼 두드리며 달빛이 마르도록 혼음했지 그러나 한 인간이 어떤 삶을 살았든지 간에 이 세상에 제 흔적을 남기지 않고 가는 사람은 없다 꿈의 해변을 함께 산책하며 너는 내 흔적이 된다 소녀여,


네가 내 삶의 한 조각을 잠시 쥐어볼 수 있다면 넌 머리가 새도록 울 수밖에 없을 텐데 사실 난 물위를 걸을 수도 있는 몸 그렇지만 방랑하는 나의 걸음은 네 안의 사막 물기 없는 발은 유사(流砂)에 쓸려가고 이 폐허를 건너지 않는다 흔한 낙타 한 마리마저 소녀여,


네가 몸을 뒤척이니 더하는 말이지만 너는 나의 유랑을 듣는 것만으로도 엉덩이에 뿔이 날 것이다 네가 내 표류의 꼬리라도 잡을 수 있다면 넌 모든 별자리를 외울 수밖에 없을 텐데 사실 난 하늘을 날 수도 있는 몸 그렇지만 잃어버린 고향은 네 안의 공중정원 녹아버린 날개는 비사(飛沙)에 뒤섞였고 이 하늘을 건너지 않네 길 잃은 철새 한 마리마저 소녀여,


이제 귀가 먹먹해지는 시간이다 입을 크게 벌리고 하품하면 이생의 기압을 거슬러오는 음성을 들을 수 있다 하나의 바늘 끝 위에서 얼마나 많은 천사들이 춤추는가 작고 아리따운 어린 사람이여, 


너라는 단 한 명

한 인간의 삶이 어떠했든지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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